중동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요르단의 수도 페트라에 위치한 알 카즈네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금고’라고 불리던 알 카즈네의 역사적 맥락과 알 카즈네를 건설했던 나바테안 왕국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나바테안 왕국
현대 요르단의 페트라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진 나바테안 왕국은 아라비안 반도의 혹독한 사막에서 번성했던 놀라운 문명이었습니다. 원래 유목민이었던 나바테아인은 기원전 6세기경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에는 페트라를 수도로 정하고 현재의 요르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 지역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이 지리적 위치 덕분에 인도와 중국 등 동양과 지중해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로를 장악하여 향신료, 물약, 유향 등의 교역을 촉진할 수 있었습니다. 나바테안 왕국의 황금기는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였습니다. 이 기간에 페트라는 주요 무역의 중심지이자 문화의 용광로가 되었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을 무역을 통해 얻은 부를 바탕으로 알 카즈네와 수도원(아드 데이르) 등 페트라가 자랑하는 화려한 암석 건축물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번영에는 혁신적인 물관리 기술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건조한 사막 환경에서 그들은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정교한 댐, 저수조, 수로 시스템을 개발하여 도심과 농업을 지원했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은 아람어에서 발전한 독자적인 문자를 개발하였고 이들의 언어와 문자는 오늘날 사용되는 아랍 문자의 조상입니다. 또한 이들은 이웃 국가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들은 숙련된 외교관이자 상인으로서 주변 국가들과 교류를 맺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과의 관계는 역동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외교와 무역 협정을 통해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로마의 이해관계가 커지면서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서기 106년, 페트라와 나바테아 왕국은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합병되어 로마의 아라비아 페트레이아 지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바테아인들은 그들의 무역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아 한동안 로마의 통치 아래서 계속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종말은 서기 4세기에 이르러 해상 무역의 발달로 무역로가 바뀌고 연이은 지진으로 인하여 결국 버려졌습니다.
알 카즈네의 역사적 사실
알 카즈네는 고대 도시 페트라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정교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이 위대한 건축물의 건설은 일반적으로 서기 1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기는 나바테아의 권력과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팽창주의와 건축 정책으로 유명한 아레타스 4세(BC 9~AD 40)의 통치 기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알 카즈네를 건설한 정확한 통치자는 여전히 학계의 논쟁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알 카즈네는 “금고”라는 의미인데 그러나 이 건축물이 금고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 이름은 이집트 파라오가 보물을 정면 꼭대기에 있는 항아리에 숨겼다는 베두인 민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나의 큰 방이 있는 내부는 다른 나바테아 무덤과 닮아서 장례식장으로서의 용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건축사적 의의
알 카즈네는 나바테안과 헬레니즘 건축양식의 놀라운 융합을 보여줍니다. 외관은 폭 약 30미터, 높이 43미터로 고린도식 기둥, 프리즈, 인물상 및 기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건축의 전형적인 요소로 복잡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특히 유골함이 있는 중앙의 톨로스(고대 그리스에서 원형 설계를 가진 건물의 통칭 – 네이버 미술대사전 용어집)와 그 옆에 있는 두 개의 쌍둥이 탑은 동서양의 예술적 영향이 독특하게 혼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나바테아인들의 광범위한 무역 관계와 이웃 문명과의 문화적 교류를 반영합니다. 페트라는 동방에서 지중해로 향하는 비단 및 향신료 경로와 무역로를 연결하는 주요 무역 중심지로서 예술적, 건축적 영향의 풍부한 융합에 기여했습니다.
보존과 가치의 인정
수 세기에 걸쳐 알 카즈네는 자연과 인간이 초래한 다양한 위협을 견뎌 냈습니다. 암석에 새겨진 이 건축물은 풍화와 침식에 시달렸고, 내부는 지진으로 인해 손상되었습니다. 고대 지진으로 바위로 만든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어 잊혔다가 19세기 초 스위스 탐험가 Johann Ludwig Burckhardt에 의해 이 유적지가 다시 발견되면서 서구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는 이 유적지를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특히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에서 이 ‘금고’가 묘사되면서 고대 중동 유산의 상징으로서 그 위상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페트라 고고학 공원의 일부인 알 카즈네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결론
페트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입니다. 알 카즈네는 따로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라 돌을 파고 다듬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건축물은 나바테안 문명의 건축적 독창성, 문화적 풍요로움, 역사적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서 성배의 마지막 안식처로 묘사되며 고대의 비밀과 보물이 잠들어 있는 페트라의 신비와 매력을 뽐냈습니다. 좁은 협곡인 시크(Siq)를 통과해야 등장하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고대 불가사의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 잡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 현재는 이스라엘과 하마드의 전쟁으로 알 카즈네가 위치한 요르단이 여행 주의 국가로 지정되었지만 신비로운 고대 왕국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는 여행객들에게는 계속 가고 싶은 여행지로 선택될 것입니다.